새 벽 흙
스페인,페니스콜라 에서 바르셀로나 까지 여행/Spain, travel from Peniscola to Barcelona 본문
스페인,페니스콜라 에서 바르셀로나 까지 여행/Spain, travel from Peniscola to Barcelona
새 벽 흙 2016. 12. 2. 06:363대륙 하이라이트 스페인,페니스콜라 -바르셀로나 여행기록
230km 2시간 걸려 페스콜라 지나쳐
바르셀로나까지 3시간 걸려서
오전시간이 버스 타는걸로 지나가 버렸다.
페니스콜라 지중해 해변
카스테욘 주(스페인어: Castellón, 카탈루냐어: Castelló 카스테요)는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 북쪽에 위치한 주로,
주도는 카스테욘데라플라나이다. 스페인어와 발렌시아어를 쓴다.
남쪽으로는 발렌시아 주, 서쪽으로는 테루엘 주와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타라고나 주, 동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하고 있다.
인구는 602,301명(2008년 기준)이며 면적은 6,679㎢이다.
2시간 운전후 10분 휴식
3시간 운전 바르셀로나
(Barcelona)는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스페인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부터 프랑스남쪽 피레네 산맥과 접경지역을 아우르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인구는 1,602,386명(2014년)이고 면적은 101.9 km²이다.
도시의 명칭은 고대 페니키아어인 '바르케노(Barkeno)'에서 유래하였다
(또는 B.C. 3세기경 스페인 식민지를 개척한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한니발 바르카의 아버지) 가문의 성에서 유래했다는 의견도 있다).
1992년 하계 올림픽이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었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 호안 미로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다.
180만 도시 바르셀로나 벨 항구에 입성 스페인 제2의 도시이며 제1의 항구도시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에서 프랑스와의 국경인 피레네 산맥에서 160km 남쪽에 위치한다.
14세기에 건설된 요새를 기원으로 하는 구시가와 1859년의 대확장 계획에 의해 건설된 바둑판처럼 사각형의 도시가 늘어선 신시가지로 구성된다.
도심에서 인구가 감소하고 주변부와 도시 권외에 유출하고, 도넛화 현상에 위협 받고있다.바르셀로나는 남동쪽으로 바다가 보이는 완만한 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은 베소스 강과 요브레가트 강 사이에 있는 비옥한 평야지대로 산으로 둘러싸여 기후가 온화하고 쾌적하다.
100개가 넘는 정기선이 바르셀로나와 세계의 주요항구를 연결하고 있다.
19세기에는 산업 혁명이 일어나 수많은 새로운 산업이 도입되어 성장했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내전으로 인하여 대대적으로 파괴되었지만, 다른 지역과 비교적으로 산업화가 잘 되어 스페인 제2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이 있는 입구.(파우 광장)
바르셀로나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콜롬버스가 이사벨 1세 여왕 만나기 위해 상륙한 도시로 항구 입구에 세워진 100년도 이상된 탑.
람블라스 거리는 구시가의 번화가로 카탈루냐 광장과 콜럼버스 탑이 있는 파우 광장 까지를 연결보행자 전용도로이다.
번화가 람블라스 거리는원래 개울이 흐르던 자리였는데 이걸 메우고 길로 변화 시켰고 람블라는 아랍어로 물이 흐는는 자리라고 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이 있는 입구 서쪽 방향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이 있는 입구 동쪽 방향
가우디 성가족성당(SAGRADA FAMI'LIA)안내서 & 입장권 15유로
건축 내역에 보면 첨탑의 높이가 170m로 되어 있다. 후에 예수를 상징하는 첨탑이 성당의 가운데에 가장 높게 위치하게 된다.
이는 몬주익 언덕이 171m라는 점을 감안한 것인데, 하느님이 만든 것을 넘봐서는 안된다는 가우디의 의도이다.
유럽의 건축물들을 보면 건설기간이 200년을 훌쩍 넘어가는 건축물이 많다.
다시 말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경우 지금까지의 공사기간이 다른 건축물에 비해 그렇게 길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래도 수백 년씩 걸려 짓는 근대 이전의 건축 방식을 21세기인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건물이라는 점이 눈여겨 볼 부분인듯 하다.
가우디가 사고로 사망한 후 다른 건축가들이 일을 이어받아 대신 건설하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에는 종유동굴의 바위 표면을 연상시켰던 장식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무수한 성인과 천사의 조각이었다.
그리고 그 위쪽의 88개나 되는 종이 달려 있는 18개의 종탑은 이제 곧 어둠에 잠길 황혼의 하늘을 뚫고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종탑들이 특대 개밋둑처럼 모여 있는 중심에는 어딘가 다른 별에서 날아온 우주선 같은 형태의 중앙탑-통칭 '황자의 탑'이
높이 170미터의 위용을 자랑하며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가정 성당 속죄의 사원. 너무나도 이교도적인 외관과 장대한 규모 탓에 교황청조차 포기해버린 '대재앙' 이전의 거대한 건축물이다.
방치된 후에는 이곳을 관광 명소로 삼으려던 바르셀로나 시와 민간 기업 사이를 전전한 끝에 지금은 까마귀와 박쥐의 둥지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가우디 성가족성당 입구 현재 탄생의 파사드 와 수나의 파사드는 완공된 상태이고 영과의 파사드는 공사중.
이 건축물의 외관이 대단해보이지만 몬세라트의 검은 성녀를 포함한 많은 외부 장식, 구조적 요소는 카탈루냐 전통적인 고딕 건축 양식에서 따온 것이다.
성가정 성당에서 지하철타고 조금 가면 나오는 바르셀로나 구 시가지에 가면 바다의 성모 성당 (Santa María del Mar),
바르셀로나 주교좌 대성당 등에 가보면 특유의 격자형 기둥 장식을 비롯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보이는 많은 전통적 건축 요소를 관람할 수 있으며,
얼핏 보면 추상적이고 난해하면서도 돈과 시간은 더럽게 잡아 먹는 이 건물이 아직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상술한 사례처럼 심지어 이념을 넘어선
예술 작품으로 대접 받을 수 있는 건 이러한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기술의 환상적인 조화를 추구한 가우디의 미학적 감각 덕분이라 할 수 있다.
현재도 공사중인 이곳은 완공되면 탄생과 수난,영광을 나타내는 총3개의 파사드(주 출입구 정면)를 갖추게 되며 갓 파사드 별로 4개의 종탑을 가지게 됩니다.
이 열두개의 종탑은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며 예수를 상징하는 중앙탑과 성모마리아를 위한 첨탑을 갖추게 된다고 합니다.
가우디 성가족성당 내부
설계 상의 높이가 170m, 현재 높이 120m(동쪽 첨탑 기준)의 이 거대한 건물은
바르셀로나의 '스카이라인(산이나 건물이 하늘에 그리는 윤곽)'을 바꿨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가우디 건축의 특징은 '건축물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기능은 반드시 유지하되 그 외형과 내부공간을 어떻게 구성하여
인간의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시킬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흔히 건축물이라고 하면 고정되고 딱딱하고 위치가 바뀌지 않을 듯한 느낌을 주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마치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움직일 듯한 모양새다.
내부의 큰 4개의 기둥이 있는데 보라색상 이4게의 기둥은 4대복음서인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의 저자를 말한다고 한다.
이 성당을 구성하는 외벽 선은 거의 모두가 곡선 형태이다. 이는 그 당시의 서구 건축역사에서 보기 드문 개념이었다.
고딕 양식 특유의 부벽에 대해 '보기 딱한 목발'이라고 불렀던 가우디는 부벽을 덧붙이지 않으면서도 건물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곡선 형상에 적합한 구조
역학까지 배려해 건축을 진행했다. 그는 성당의 모형을 만들기 전 실을 천장에 매달고 모래주머니 또는 납추를 중간중간에 매달아
휘어지는 강도를 측정했는데, 이 작업을 통해 그가 원하는 곡선이 도출되면 설계에 반영했다
중앙 제단은 미사를 집전하며 사제들이 자리하며 성당의 중심으로 장식은 호화스럽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대성당. 천재 건축가로 알려진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로,
기존 성당 건축의 특징을 잘 계승하면서도 가우디 특유의 개성이 잘 융합된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82년부터 착공에 들어간 이래 13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건축되고 있다.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으로 완공이 예정되어 있다. 근데 과연 가능할까?
가우디 성가족성당 후면부
특히 해가 질 무렵 붉은 노을을 받았을 때 성당의 모습은 황홀경 그 자체다.
가우디는 40년 동안 이 성당 건축에 혼신의 힘을 다했으며 1926년 전차에 치여 사망할 당시에도 성당 앞에서 상념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사후 그가 안장된 곳 역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지하. 유네스코는 가우디의 또 다른 작품인 구엘 공원과 카사밀라 등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과연 어디까지 뻗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라며 극찬했다.
수난의 파사드 전면-예수가 당하는 수난을 표현,군중선동 죄명 체포,재판받고,십자가에 목박혀 죽는 과정을 파노라마 처럼 표현했다.
동쪽면의 나시미엔토 면의 조각들은 가우디가 조각했는데,
여기에 인물상들은 모두 가우디가 살던 동네 사람들을 일일이 석고로 본을 뜬후 그대로 돌로 조각해서 만든 것들이라고 한다.
가우디가 제작한 파트가 바로 나시미엔토 면이며, 이 부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반대쪽에는 가우디가 죽고 30년후인 호세 마리다 수비라츠라는 모더니즘 조각가가 조각을 시행했다.
그래서 가우디가 설계한 파트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수비라츠의 인물상들은 가우디와 완전 반대 성향으로 각진 정형화 및 일부 추상화가 가미되며 얼굴부분이 음각되어 있어서
어떤 방향에서 바라봐도 감상자를 쳐다보는 듯한 착시를 안긴다) 가우디가 실제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본 따 묘사했다면
수비라츠는 간결하고 직선을 주로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널리 알려진 면의 반대쪽을 보고 실망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실망하는게 당연할 수도 있는 것이,
아직 미완성이다. 위의 발코니 부분이 완성되고 나면 또 어떨지?
가우디 구웰공원(PARK GU"ELL)안내서
안토니오 가우디는 당시에 앞서가는 몇 명 되지 않는 예술가였으며, 그 시대에는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권력있는 산업 공상가이자 예술 애호가였던 에우세비 구엘 백작의 도움으로, 가우디의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많은 아이디어들이 작품화될 수 있었습니다.
구엘 공원은 1900년 에우세비 구엘이, 당시에는 바르셀로나 외곽 지역이었던 카르멜 산의 부지를 산 후
주거지 구성을 가우디에게 맡기면서 처음으로 구현되었습니다.
인구가 집중되고 비위생적인 도시들에서 멀리 살고 싶어하는 높은 구매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전원적인 환경에 몇개의 집을 짓도록 하여,
영국의 도시-정원 (그래서 공원이라고 이름을 붙였음) 모델을 모방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3km에 이르는 길들과, 광장, 계단, 수위실, 그리고 잠재 고객들을 설득하기 위한 모델하우스까지 지어졌습니다. 1
4년 후, 상업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여겨져, 프로젝트가 중단되었습니다. 에우세비 구엘은 구엘 공원의 집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그의 상속인들은 공원을 시청에게 제안하여, 시청은 1922년 그것을 구매하고 1926년에 시립 공원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벤치가 있는 광장.원래는 시장 자리 였고 아래는 신전 닮은 공간은 비올때를 대비 했다고 한다.
구엘 공원은 마치 동화 속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이상하고, 특이하고, 꿈 같은 장소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공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 공원을 산책하면 가장 깊이 잠자고 있는 상상력도 깨어납니다.
기이한 형태와 대담한 색상의 조합, 식물과의 혼합은 방문자로 하여금 결코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색다른 세상을 창조합니다.
구웰공원 광장-계단의 끝에서 86개의 기중으로 이루어진 돌 숲 하이포스타일 홀로 갈 수 있습니다.
이곳은 본래 주민들이 도시로 내려가지 않고도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시장을 공간이었습니다.
바로 위에는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대광장이 있습니다. 광장의 둘레를 따라 트렌카디스 기법의 파형 패턴이 있는 벤치가 있습니다.
벤치 뿐만이 뱀처럼 구불구불한 것이 아니라, 공원의 모든 길들이 그렇습니다. 길목과 다리들 역시 자연을 모방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가우디 구웰공원 중앙계단방향-입구로 들어서 우측으로 마차가 돌아나가던 공간을 만둘어 놨다.
공원에 들어서면, 우리를 동화의 세계로 이끄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신기하게 생긴 작은 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과거에 수위실이며, 지금은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 공원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시작되며, 구엘 공원과 바르셀로나의 상징물들 중의 하나인,
다양한 색상의 작은 타일 조각들로 뒤덮힌 유명한 용 조각이 있습니다.
가우디 작품의 특징적인 기법이며, 공원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 기법은 트렌카디스라 불리며, 불
규칙적인 타일 조각들 및 기타 재료들을 외장 마감으로 사용합니다.
사용된 조각들은 일부러 파쇄한 조각들이거나 다른 건축물의 잔해들입니다.
트렌카디스 기법을 이용하여 마감 처리한 많은 작품들은 가우디의 조수이자 수제자였던 조셉 마리아 주졸의 작품들입니다.
공원 안내도
구웰공원의 정문을 통해서 본 두개의 건물은 전시관과 기념품가계로 사용되고 있다. 우측 지붕의 가우디 십자가로 즐겨 사용한 형태.
구석 구석 자연의 형태에 대한 건축가의 열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우디는 그 숲에서의 인간의 개입이 경치와 조화를 이루고 숲을 보완하기를 원했으며, 확실히 그것을 이루어냈습니다.
달팽이, 버섯, 나뭇잎, 꽃, 나무 기둥, 코끼리들이 건축의 형태로 모자이크에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게다가, 수위실의 굴뚝도 뒤집힌 버섯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외부의 벤치는 타일을 조각내어 붙인것으로 규칙적이고 독특한 패턴을 연속하게 모든 벽면과 통일성을 연결 파도가 물결치는듯 표현한것도 독특하다.100년 전에???
구웰공원을 조성하며 남은 돌멩이를 쌓아만든것으로 인공적인 느낌을 적게 하고 여기에도 그리스 문화에 대한 동경을 넣어 놓았다고한다.
이 도마뱀(피톤:커다란 뱀을 형상화))은 아래쪽으로 물을 흘려 보낸 배수구 역활을 하고 있다,신화속 설화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가우디 살았던 집-1906-1925년 말년의 대부분을 보낸 곳-지금은 가우디 박물관으로사용하고 당시 사용한 가구들을 전시했다.
가우디는 1906년에 부친, 조카와 함께 직접 모델하우스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에 살다가 1926년 그의 거대한 작품의 지하실로 이사하는데,
그곳은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입니다. 현재 가우디가 만든 가구들, 모형, 그림 및 특이한 개인 물품들은가우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몬주익 스타디움 1992년 올림픽이 열린곳-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알리는데 일조를 한곳이다.
황영조 선수를 기념 조형물은 기념관 건너편 버스 정류장 뒤에 위치해 있다.스페인 카탈루냐 주와 경기도가 자매결연 의 우호를 기념하기위해 세워쪘단다.
6시간의 버스이동 후 2시간 관광 다시 버스로 3시간( 레리라도 이동) 하루에 9시간 이동 여행은 움직임이다~~체력싸움 ㅎ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것. 바로 바르셀로나 곳곳에 녹아있는 천재 가우디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가우디가 현재 바르셀로나를 먹여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세계의 사람들이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방문하고 있다.
지금도 건설중에 있는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El Templo de la Sagrada Familia)부터
까사 바트요(Casa Batllo), 까사밀라(Casa Mila), 구엘 공원(Guel Parc) 등 독창적이고 상상력이 넘치는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스캐빈저 헌트를 하듯 바르셀로나 구석구석에 퍼져있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찾다보면 하루가 빨리 지나간다.
인간의 모든 발상과 창의력을 총집합한 것만 같은 가우디의 세계에 흠뻑 빠져보자.
마드리드에 가깝게 가기 위해서라나? 9시간 승차 지친다-하루 하루가- 9일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