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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세고비아 에서 톨레도,마드리드 까지 여행/Trip from Spain, Segovia to Toledo, Madrid 본문
스페인,세고비아 에서 톨레도,마드리드 까지 여행/Trip from Spain, Segovia to Toledo, Madrid
새 벽 흙 2016. 12. 4. 09:40조식후 성채도시로 떠나는데 비가 내린다.
약 1시간 세고비아로 이동인데
세고비아(스페인어: Segovia)는 스페인 카스티야레온 지방 세고비아 주의 주도이다. 면적은 163.59km²이며,
평균고도는 1,000m 이다. 인구는 52,728명 (2015년)이고, 인구밀도는 325,57명/km²이다.
마드리드 북서쪽 60km 지점에 있는 과다라마산맥 기슭 해발 1,000m 지점에 있다. BC 700년 무렵부터 이베리아인이 거주하였으며
BC 1세기 말에 로마의 식민시가 되었다. 11세기에 이슬람교도가 침입하여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카스티야왕국의 알폰소 10세는 이곳을 수도로 정하였다
.중세에는 양모공업이 번창하였으며, 현재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여 도자기와 직물제조가 이루어진다.
도시 곳곳에 로마인이 세운 수도교(水道橋)와 성채 알카사르, 대성당 등 고대와 중세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세고비아주에 있는 역사유적. 로마시대의 수도교와 로마네스크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1985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도착즈음 비는 그치고 흐리기만 했다.
세고비아의 랜드마크 고대 로마의 유적 로마 수도교 전경
수도교는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년) 때 건설되었으며 1906년까지 고지대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시내에서 17km 정도 떨어진 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을 끌어오기 위하여 축조되었는데,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128개의 2층 아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길이 813m, 최고 높이 약 30m로서 다듬은 과달라마 산맥에서 가져온 화강암만을 사용해 축조했고,
시멘트류나 칠을 입히는 등의 접합방식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아치 윗단 니치 부분에는 성인조각상이 모셔져 있다.로마시대에 지어진 이 수도교는 유럽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수도교로 길이가 거의 720 미터나 된다.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지만 최신식 수도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어 인위적으로 물을 흘려보낼수는 있다.
로마 제국은 머나먼 수원지에서 도시나 마을로 공중목욕탕, 공중화장실, 분수, 사유지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다양한 수도교를 지었다.
또한 농장이나 정원에 공급되었고, 사용하고 남은 물은 하수처리를 위한 복잡한 하수도를 통해서 오수와 폐수등을 배출하였다.
수로에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물을 흘려서 공급하였다. 경사도는 평균 0.2~0.5%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16.5%가 되었는데,
공사지역의 기후와 특성에 따라서 돌과 시멘트를 사용한것과 벽돌을 사용한 것도 있다. 언덕이 그리 넓거나 크기 않다면,
갱도를 파고 들어가 관통하는 방법을 택했고 일정한 간격으로 언덕에서 수직으로 굴을 파서 수리구멍과 환기구를 만들었다. 골
짜기가 나오면 다리를 높거나 사이펀 원리로 밑을 파고 들어갔다.
기둥부분
로마의 첫번째 수로는 성벽안의 도시에 물을 공급하였고, 3세기 무렵에는 로마에 11개가 되는 수도교가 건설이 되었다.
수도교는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 로마의 경제를 지탱하였다. 물의 대부분은 공동수조나 분수, 목욕탕 등에 사용이 되었고,
로마제국이 성장하면서 다른 도시나 자치구역에 수도교가 추가로 건설되었다.
상층부에서 바라본 모습
이 튼튼한 수도교는 현재도 일부 지역을 그대로 쓰이고, 유물 보호때문에 현대식 수도관을 내부나 아래에 설치하여 지금도 시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서적을 출간하였던 적이 있는데, 기원전 1세기의 비트루비우스의 건축론이나 프론티누스의 수도론이 대표적인 서적이고,
유명한 수도교 건축물로는 세고비아 수도교의 다리와 콘스탄티노플의 수도교가 있다.
수도교 상층부
도시 조감도 모형
알카사르 성채
스페인의 다른 수많은 요새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아랍의 요새가 있던 곳에 건설된 성이다.
이 아랍 요새 역시 그 자체는 로마 시대의 요새 위에 지어진 것으로, 그 흔적이 약간 남아있다.
이 특별한 알카사르가 문헌에 언급된 것은 1120년으로, 도시가 기독교 세력의 손에 넘어간 뒤 32년 만이다.
이 시기에 카스티야 이 레온의 알폰소 6세가 남쪽의 두에로 강으로부터 톨레도와 그 너머까지 내려가 영토를 재정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자료들은 이 알카사르가 있던 자리가 과거 로마 시기에 요새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알카사르의 모습은 알폰소 8세(1155년 ~ 1214년) 시절까지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이른 시기의 서류들에서는 알카사르의 나무로 된 목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로써 알폰소 8세의 통치 이전에 이것은 로마 시대의 기초 위에 세워진 나무 요새에 지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알폰소 8세와 그의 부인인 플란타지네트 왕가의 엘레노어는 이 알카사라를 그들의 궁전으로 삼기로 결정했고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돌로 만든 요새를 위한 수많은 작업이 이루어졌다.
2시간 30분 이동해서
도착한 톨레도 시가지
톨레도(스페인어: Toledo, 라틴어: Toletum)는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70km 떨어져 있는 스페인 중부의 도시이다.
톨레도 주의 도시이며 카스티야라만차(스페인어: Castilla-La Mancha) 자치지역에 포함된다.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언되었으며 단연 문화적인 스페인의 유적지이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유적이 공존하는 장소이며,
스페인의 옛 수도이기도 하다. 스페인 역사상 수많은 유명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다.
(2005년 기준 75,578명, 232.1 제곱킬로미터)
시가지 전경
톨레도는 서고트왕국의 수도였으며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8세기에 정복한 이후 줄곧 수도의 역할을 하였다.
코르도바 칼리파(스페인어: Califato de Córdoba, 아랍어: خلافة قرطبة)의 지배하에 톨레도는 황금 시대를 누렸다.
이 시기 동안 톨레도는 라 콘비벤시아(스페인어: La Convivencia)로 알려졌으며 세 종교의 공존처였다.
아랍인의 지배하에서는 طليطلة로 불렸다.1085년 5월 25일,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가 톨레도의 지배권을 장악하였으며
그가 계속해서 무어인들에게 톨레도를 재물로 바칠 것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는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통합을 향한 최초의 구체적인 발판이 되었다.
톨레도는 철제 생산과 특별히 검 제작으로 유명하다. 여전히 시 중심부에는 칼과 철제 생산품을 생산하고 있다.
펠리페 2세가 궁정을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1561년 옮기면서 고도 톨레도는 이제껏 없었던 잠시 동안의 침체기를 겪는다.
스페인 제일 성당 똘레도 대성당 내부톨레도는 이슬람계의 칼리파 왕조 시대에 예술과 과학의 조화를 이룬 최정점의 아름다움을 달성한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걸작은 "톨레도의 분수대"일 것이다.
역사가 하양고(P. de Gayangos)에 따르면 무슬림 과학자들은 이 시대에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강성했으며 그 위업 중 최고가
톨레도의 분수이다.고도 톨레도는 타구스 강의 협곡과 함께 세 면이 둘려싸여 있으며 많은 역사적인 장소들을 간직하고 있다.
스페인의 수석 대주교인 대성당 알카사르(Alcázar), 중앙 시장 격에 해당하는 소코도베르(Zocodover) 등이 해당된다.
5세기부터 16세기까지 30여 개의 종교회의가 톨레도에서 있었다. 가장 초기의 것은 스페인의 주교였던 프리실리안을 공박하기 위해서 400년에 있었다.
589년에 있었던 종교회의에서는 서고트왕국의 왕 렉카레드 1세(King Reccared)가 아리우스파에서 개종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633년도의 회의에서는 비스고딕 왕국 전역의 기도회 양식에 대한 통합을 논하였으며 타락한 유태인들에 대한 강력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681년도에는 톨레도의 대주교가 스페인의 수위로 선언된다.
백색의 성모
성가대 앞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으로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비교해서 스페인의 모나리자 라고도 부른다
14세기초 프랑스에서 만들어져 이곳에 기중했다
똘레도 대성당 내부 벽체 천장부
톨레도대성당은 스페인이 이슬람 세력과 벌인 나바스 데 똘로사 전투에서의 승리로
레콘키스타(이교도추방운동)의 완성을 기념하기 1227년 페르난도 3세에 의해 착공되어 1493년알폰소8세 때 만들어진 것이다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제단은 7폭의 병풍형태로 되어있다
가운데 부분은 5개의 조각으로 되어 있어 하단부터 성모자상, 성체현시, 예수탄생, 성모승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로 되어 있다
그리고 왼편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오른편엔 부활과 영광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양쪽 가장자리엔 이곳출신의 대주교들이 조각되어 있다
제일 성당 똘레도 대성당 내부
톨레도 대성당은 1226년에서 1493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로마의 부르주 대성당을 모델로 삼아 지어졌다. 대성당은 무데하르의 건축 특질도 반영하였다.
똘레도 성당은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으로 산하에 본당, 수도원 합쳐 60개가 된답니다
15세기 그라나다 함락과 스페인 통일이후에 실시된 유대인 추방정책의 중심이되였던곳 또한 이곳 톨레도 성당이다.
이성당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1227년에 페르디난도 3세의 명으로 착공되어 1493년(약270년)에 완성 되었다.
대성당 내부의 넓이는 안길이 113m, 좌우 57m, 높이는 본당 중앙부가 30m이며,22곳의 경당과 750의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기념비를 겸한 5개의 문이 유명하다.
특히, 면죄의 문, 시계의 문, 사자의 문이 유명하다
성 크리스토포루스
크리스토포루스는 '그리스도를 어깨에 업고 간다'는 뜻의 그리스어이다.성 크리스토포루스는 시리아 출생으로 소아시아에서 선교를 하던 중 순교하였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사람들을 업어 강을 건너주는 일로 생계를 꾸려 가던 거인이었는데
어느 날 조그만 아이를 업고 강을 건너는데 너무 무거워 건널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그에게 아이는
"너는 지금 세계를 옮기고 있다. 나는 네가 찾던 왕,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중앙 제단 옆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할 만큼 커다란 이 그림은
성 크리스토포루스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그는 여행자와 자동차 운전자의 수호신으로
동,서방 교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수호성인들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똘레도 대성당 외부 뒷편
구시기외 성곽
고풍 스러운 구시가지
스페인, 세고비아,톨레도,구경 후 마드리드 복귀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 하며 이번 여행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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